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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IS] 77세 여배우 나문희, 56년 만에 탄 여우주연상 의미
1941년생 올해 77세의 여배우 나문희가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나문희는 지난 27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1회 더서울어워즈에서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지난 1961년 MBC 라디오 1기 공채 성우로 처음 연기를 시작해 56년 만에 처음으로 거머쥔 여우주연상 트로피다. 젊고 아름다운 여배우들 사이에서 77세의 노년 여배우 나문희가 거둔 쾌거다. 여전히 극장 상영 중인 영화 '아이캔스피크(김현석 감독)'로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에 이어 벌써 2관왕에 올랐다. ▶나문희라 가능한 '아이캔스피크''아이캔스피크'는 민원 건수만 무려 8000건, 구청의 블랙리스트 1호 도깨비 할매 옥분(나문희)과 오직 원칙과 절차가 답이라고 믿는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영어를 통해 운명적으로 엮이게 되며 밝혀지는 진심을 그린다. 이 진심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다루기 어려운 소재에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그럼에도 나문희여야 했던 것은 그가 동년배의 배우들 중 가장 젊은 관객들과 친근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김현석 감독은 "어린 친구들에게는 '호박고구마!'를 외치는 할머니로 더 유명하다. 그렇게 친근한 할머니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연관지어 자연스럽게 문제에 접근하기를 바랐다. 나문희 선생님은 그것이 가능한 배우다"고 전했다. 나문희는 까탈스러운 민원인으로 시작해 정 많은 동네 할머니, 그리고 마지막엔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당당한 할머니를 연기한다. 나문희는 '아이캔스피크'를 위해 영어를 독학해 장문의 영어 대사까지 소화해야 했다. 노령으로 힘든 촬영 현장에서 체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촬영 현장을 아우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극 중 혜정 역으로 분한 배우 이상희는 "연기할 때는 굉장히 무섭게 집중하시는데 휴식 시간에는 그 보다 더 소녀같은 분이 없다. 촬영 중간중간 산책을 즐겨 하셨는데 꽃을 보면서 꺄르르 웃던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엄마'를 탈출한 국민엄마 77세 여배우가 맡을 수 있는 역할엔 무엇이 있을까. 엄마 아니면 할머니다. 실제로 나문희는 국민엄마로 불렸다. 젊은 배우들을 뒷받침해주는 엄마였다. 지난해 방송된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선 당당히 주인공으로 활약했지만 그마저도 엄마이긴 마찬가지였다. '아이캔스피크'는 그런 국민엄마를 엄마라는 틀에서 벗어나게 해준 결정적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옥분은 위안부 피해자라는 상처를 안고 홀로 살아간다. 자신을 피하는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혼자 시장을 돌아다니며 각종 민원 거리를 찾아다니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영어를 배우기도 한다. 누군가를 위해 살던 엄마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사는 인물이다. 나문희가 누군가를 받쳐주는 배우가 아닌 그만의 힘으로 주연을 꿰찬 배우인 것과 같다. '아이캔스피크'로 나문희라는 배우의 활용 영역,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남자만 가득한 충무로의 77세 여배우 충무로가 남자 배우들로 가득한 지 오래다. 여자 배우들은 이들의 조연이었다. 그런 충무로에서 여든을 앞둔 여배우 나문희는 '아이캔스피크'라는 상업영화를 이끌었다. 충무로 모든 여배우들에게 그는 이제 가장 빛나는 롤모델이 됐다.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은 나문희는 "감독이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기에 '할머니가 무슨 여우주연상이냐'고 했다. 할머니로서 후배들에게 피해를 줬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카메라 앞에 서면 욕심이 나 염치 불구하고 연기를 했다"며 "나이 77세에도 여우주연상을 탄 내가 있으니 후배들에게 좋은 희망이 될 것 같다. 여러분들은 80세에도 상을 타시라"고 말했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oins.com 사진=더 서울어워즈
2017.10.29 15:45